
요즘 너무 볼 게 없어서 자기 전에 조금씩 다시 보고 있는 애니가 있다. 바로 진격의 거인..... 사실 이 작품은 내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이 3년 전부터 계속 추천해 줬던 작품인데 내가 볼 만한 애니를 추천해 달라고 할 때마다 친구들은 항상 “진격의 거인은 꼭 봐야 한다”, “진격의 거인을 안 보고 죽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만큼 명작이다”라고 거의 가스라이팅에 가깝게 말하곤 했다 ㅎㅎ 그래서 몇 번 보려고 시도는 했고 1화, 2화까지는 봤는데 이상하게 앞으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특히 초반 훈련하는 부분이 나에게는 조금 느리게 느껴졌고, 확 끌어당기는 느낌이 부족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보겠지” 하고 미뤄두기만 했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방학에 “그래, 한 번만 다시 도전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 나는 바로 진격의 거인의 매력에 제대로 빠져버렸단다 ㅎㅎ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명작이라고 하는지, 왜 전 세계가 이 애니에 열광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고, 보고 나서는 정말 “아, 다행이다. 나도 죽기 전에 봤다” 싶은 기분이었다ㅎㅎ 나는 원래 작품을 보고 나면 유튜브에서 관련 해석 영상이나 코멘터리 영상을 찾아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거도 본편을 다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영상으로 다시 보니까 또 다른 색으로 재미있었다. 처음 볼 때는 놓쳤던 복선이나 인물의 선택, 대사의 의미가 다시 보였고, 그래서 이 작품은 한 번 보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 곱씹게 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번에도 다시 정주행하면서 꽤 신기했던 건, 초반에 뿌려진 떡밥들이 하나같이 뒤에서 연결된다는 점이었다. 처음 볼 때는 1.5배속으로 봐서 그런지 조금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거의 모든 장면에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그냥 지나갔던 대사나 표정, 배경 속 작은 단서까지 나중의 전개와 이어지는 걸 발견할 때마다 “이게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다고?” 싶어서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 왤케 어려워했었지? 라고 생각을 한번 해봤는데 그게... 한창 큰 사건이 터졌다고 생각하면 다음 화에서 갑자기 “12시간 전”으로 돌아가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시 보여주는 식의 전개가 자주 나온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구성이 조금 헷갈리고 어렵게 느껴졌던 게 아닐까 ㅎㅎ 근데 뭐 다시 보니 이것도 진격의 거인만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을 단순히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나중에야 전체 그림을 맞추게 만드는 것.... 그렇게 어마무시한 내용을 알아버리는 것... ㅎㅎ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작품에 열광한 이유 중 하나는 역시 거인들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인 것 같다.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진실이 풀리고, 반전에 또 반전이 이어진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충격받아서 “진격의 거인 안 본 눈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때의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음 (나는 스포 없이 다 봤던 경우라서... 보면서도 그냥 넉을 놓고 봤음)
그리고 인상 깊었던 부분들도 정말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후반부로 갈수록 가장 강하게 남았던 감정은, 에렌이 “자유”라고 말할 때마다 점점 무서워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유라는 말이 희망처럼 느껴졌다. 벽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고, 자신들을 가두는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에렌이 말하는 자유는 더 이상 밝고 희망적인 단어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에렌이 “자유”를 말할수록 무언가 불안했다. 그가 무엇을 갈구하는지는 알겠는데, 그 방법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물론 에렌도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 길을 선택했다는 거 알겠는데....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친구들에게 더 기대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조금 덜 잔인한 길은 없었을까? 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ㅠㅠ( 물론 그런 길이 쉽게 있었다면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유명해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누가 완전히 옳고 누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처음에는 거인과 인간의 싸움처럼 보였지만,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누가 적인지 모른 채 싸워야 하고, 서로 다른 편에 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그 믿음조차도 역사, 교육, 공포, 증오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특히 두 편이 대립하게 되는 후반부는 보는 내내 마음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지만, 사실 그들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이기도 했다. 자신이 태어난 곳, 배운 것, 들은 이야기,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 때문에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너무 잔인했다. 그래서 이에니는 증오가 어떻게 이어지고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적으로 배우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샤를 죽인 아이를 결국 용서하는 장면도,,, 다들 명장면이라고 뽑는 장면인데... 누군가를 단순히 괴물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증오의 숲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았다.
“숲에서 나와야 한다.”
이 말이 그래서 너무 아프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복수하고 싶은 마음,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야 한다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아무도 숲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진격의 거인은 그 숲이 얼마나 깊고 무서운지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처음 봤을때도 그렇고 이번에 다시 봐도 충격적이었던 말이 에린이 바다 뒤에는 자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적이 있어 실망? 하고 적을 다 죽이면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나? 라는 대사인데... 헉,,, 그렇게 생각을 하시다니.... ㅠㅠ 또 하나 오래 남은 말은 “인간은 무언가의 노예다”라는 대사인데,,, 누군가는 힘의 노예이고, 누군가는 사랑의 노예이고, 누군가는 꿈의 노예이고, 누군가는 자유의 노예다. 그리고 무언가에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말도 계속 생각났다. 에렌에게는 그게 자유였던 것 같다. 자유를 원했지만, 결국 자유라는 말에 가장 강하게 묶여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는 그런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다. 내가 살아가면서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은 뭘까. 행복? 아님 나 역시 자유인가 싶었다. 왜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고 느낀 순간에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그것도 내가 갈구하는 자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에렌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나와 닮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는 끝까지 보고 나니 이 작품은 거인보다 인간을 더 무섭게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자유를 원했던 사람들, 살아남고 싶었던 사람들, 누군가를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그래서 보고 나면 시원하다기보다 여운이 오래 남는다. 누가 옳았는지,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 자유란 정말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격의 거인은 정말 명작이라는 말을 들을 만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나도 결국 친구들의 말처럼, 죽기 전에 봐서 다행인 작품 하나를 만난 것 같다 옆에서 보라고 계속 부채질했던 분들 고맙다고 하고 싶어질 정도다 ㅎㅎ
Ps. 잊기 전에 쓰고 싶은데 내용이 조금씩 조금씩만 생각나고 그래서 두고두고 고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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